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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 대사

🇰🇷🇯🇵🇺🇸
1960년대 후반 박정희 대통령은 제철공장을 열망했다. 그러나 선진국과 국제기구들은 그의 호소에 냉담했다.

인도, 터키, 멕시코, 브라질처럼 조건이 좋은 나라들도 실패했으니 그만두라고 충고했다.🐲

박 대통령은 도와줄 나라는 일본뿐이라고 판단했다.

그는 가나야마 마사히데(金山政英) 주한 일본대사를 불러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 총리에게 보내는 친서를 건넸다.🇯🇵

“이번엔 주일 한국 특명전권대사 노릇을 해주십시오. 포항제철 건설에 관해 사토 총리대신의 긍정적 답변을 얻지 못하면 대사께선 서울로 돌아오실 필요가 없습니다.”

가나야마가 맡은 일은 불가능한 임무(mission impossible)였다.
사토 총리는 이미 박 대통령의 요청을 거부한 터였다. 🌘

가나야마는 외무성을 거치지 않고 바로 총리에게 박 대통령의 친서를 올렸다. 사토 총리는
“제철은 안 된다고 했는데 또 얘기하느냐”고 역정을 냈다.

가나야마는 박 대통령의 제철공장에 관한 꿈과 의지를 간곡히 설명했다. 그제야 사토 총리는 일본 철강업계가 반대한다고 말했다.🐝

가나야마는 역사가 길고 규모가 큰 야하타제철소의 이나야마 요시히로(稻山喜寬) 회장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이나야마는
“나사 하나도 못 만드는 나라가 무슨 제철소냐”고 냉소했다. 😨

가나야마는
“1897년엔 일본이 그런 소리를 들었다”고 지적했다.

그에게 설득돼 이나야마는 포항제철 설립에 필요한 기술을 제공하기로 했다. 👦

자금은 일본이 제공한 ‘청구권 자금’으로 충당하기로 했다.

박 대통령의 의지와 가나야마 대사의 헌신이 열매를 맺어 1970년 포항제철소 기공식이 열렸다. 3년 뒤 포항에선 조강 연산 103만t의 포항제철소 준공식이 거행됐고, 사토 전 총리가 국빈으로 참석했다. 🐔

그 뒤 포항제철이 국제적 기업으로 발전한 것은 모두 잘 아는 역사다.

포항제철에 기술을 제공한 뒤 야하타제철소는 두 차례 합병을 거쳐 신일철주금이 됐다. 포항제철이 빠르게 자라나는 사이 야하타제철소의 후신들은 경쟁력이 낮아졌고, 포항제철에 기술을 제공한 이나야마 회장은 부정적 평가를 받았다. 🌾

그래도 두 회사는 우호적 관계를 유지했다.

근년에 신일철주금이 특허 침해로 포항제철을 제소한 적이 있지만 상호 지분 교환으로 관계를 정상화했다.🍃

얼마 전 야하타제철소에서 일했던 한국인 징용 노동자들이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보상 소송에서 한국 대법원은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그리고 신일철주금이 포항제철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취득한 지분이 압류 대상이 됐다. 참으로 얄궂은 인연이다. 😢

가나야마 대사와 이나야마 회장이 무덤에서 돌아누울 일이다.

이처럼 난처한 상황이 나오지 않도록 하는 것은 정치의 몫이다. 😈

두 나라가 조약으로 과거를 마무리했으면 어느 정부든 국내 사정으로 분쟁이 이는 것을 막아야 한다.

대법원의 판결을 존중하되 그 판결의 영향이 나라 밖까지 미치는 것을 막는 방안을 찾는 것이 정치 지도력이다. 🍄

그런 방안에 관해선 외교 전문가들 사이에 이미 상당한 합의가 이뤄졌다.

조약을 국내 사정을 들어 허물면 궁극적으로 손해는 우리가 본다.
우리의 국제적 평판이 크게 낮아지고 그만큼 외교 능력이 약화된다. 🌅

외국 기업의 재산권을 보장해주지 못하니, 외국 기업들이 위험 할증을 늘려서 우리는 지속적으로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비용을 치러야 한다.

게다가 일본은 안보와 경제에서 우리가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나라다. ⛺

한국과 일본 사이가 벌어지면 한·미 동맹도 빈 껍질이 된다.

한국 기업들은 기술과 부품을 일본에서 많이 들여온다. 반면 일본으로선 한국에 아쉬운 소리를 할 일이 드물다. 🇰🇷

한국 사회의 거센 반일(反日) 감정을 자신의 정치적 자산으로 바꾸려는 지도자의 시도는 늘 성공했지만 우리 사회는 일방적 손해를 봤다.

가나야마는 주한 대사로 외교관 경력을 마감했다. 🇯🇵

원래 유럽에서 오래 활동했던 터라 그는 유럽과의 문화 교류를 관장하는 단체를 맡아달라는 제안을 일본 정부로부터 받았다.

그러나 그는 그런 좋은 자리를 사양하고 궂은 일만 많은 한국과의 문화 교류 사업에 헌신했다.🚢

그는 자신의 마음이 늘 향한 한국에 자신의 유골 일부를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지금 그의 유골 일부는 파주 천주교 묘지에 묻혀 있다. 고맙고 부끄럽다.🍓
🍏🍇🍒🍋🍐🍈🍌🎂🍳🍟🍮🍝
金山政英 최서면 곁에 눕다 - 괴산타임즈 -
http://www.goesan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197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