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쇼토쿠지의 회견 正徳寺의 会見♓❔〽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님은 소년기부터 오와리의 멍청이(尾張の大うつけ)로 불렸다. ⚫
다이묘(大名)의 적남(嫡男)이면서도 혈통이나 신분 고하를 가리지 않고 뭇 사람들과 어울리고,<실력> 하나를 척도(尺度)로 삼아 측근으로 기용하는 파격을 보였으니 당대의 시선에선 곱게 보일 리 만무했던 것이다.
거기에다 아비인 노부히데(織田信秀)로부터 일찍이 후계자로 인정받았지만 어미인 도타고젠(土田御前)이 차남 노부유키(織田信行)를 편애했던지라 가독(家督)을 순조롭게 이어받기에도 불안한 정황이었다.🔴
노부히데가 타계한 이후, 다행히 가독을 승계했지만, 스승이었던 숙로(宿老) 히라테 마사히데(平手政秀)가 멍청이 짓을 그만두라는 간언을 남기고 자결해 버린 것이 덴분(天文) 22年(1553년) 정월의 일이었다. 🍁
히라테 마사히데는 앙숙 관계였던 미노(美濃)의 사이토 도산(斎藤道三)과 맹약(盟約)을 체결시키는 데에 있어서 혁혁한 활약을 펼쳤던 인물이라 평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오다 노부나가님을 반대하는 진영 쪽에서는 절호의 기회가 온 셈이었다. 🐕
오다 가문의 ‘내홍(内訌)’이 바야흐로 수면 위로 활짝 드러날 계제였다.
이 때를 미노의 살무사로 평가받는 사이토 도산이 방기할 리 없었다. 🍂
미노와 오와리의 화의(和議)를 지속시킬지, 아니면 맹약을 깨고 평생 숙적이었던 오와리를 침공해 결판을 낼지 도산은 결단을 내리고 싶었던 것이다.
물론 맹약을 위해 딸 기쵸(帰蝶)를 노부나가님과 결혼시키긴 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정략혼인. 화의의 재물에 지나지 않았다. 기름장수 출신으로 무사가 되고, 또 주군도 쫓아내어 일국의 국주(国主)가 된 도산이 아니던가. 😈
가문이나 혈통 따위 없이 오직 실력 하나만으로 살아남은 도산. 여차하면 사위 정도야 간단히 내치고도 남을 인물이라 할 수 있겠다.
다만, 그 이전에 도산은 노부나가님의 <기량>을 자신의 눈으로 파악하고 싶었다. 🎁
정말로 소문대로 멍청이에 불과하다면, 딸에겐 미안하지만 어떠한 미련도 가질 필요가 없을 터였다.
그리하여 회견을 추진, 전격적으로 성사된 것이 바로 '쇼토쿠지(正徳寺)에서의 만남'이었다.😺
사이토 도산은 여기에서 노부나가님을 처음으로 접견하게 된 것이었다.
의당 쇼토쿠지에서 노부나가님의 기량이 소문대로라면 그 자리에서 척결할 속셈마저 도산이 지녔음은 두말하면 잔소리이겠다. 📶
일의 속사정이 그러하니, 노부나가님에겐 이래저래 위기일발의 형국이 아닐 수 없었다.
덴분(天文) 22年 4월.
미노와 오와리의 경계지점에 위치한 쇼토쿠지.
일단 도산은 측근을 비롯해 소수 정예의 무장병력을 대동하고, 사찰로 들어오는 길목의 작은 오두막에 숨어 노부나가님을 기다렸다. 🍈
과연 어떤 모습으로 찾아오는지 자신의 눈으로 먼저 확인하고 싶었던 참이다.
마침내 오다 노부나가님의 행렬이 도산의 시야에 거침없이 들어왔다. 예상을 깨고, 보무도 당당한, 그야말로 옛날 겐무의 신정(建武の新政)을 기치로 내건 군세처럼 그 위엄은 장엄하기 이를 데 없었다. 🐒
우선, 군사 퍼레이드 같은 행렬의 선두에 선 것은 20기의 기마 무사들이었다. 그 뒤로 노부나가님이 시정의 젊은이들처럼 자유로운 복장으로 말(馬)을 탄 채 여유를 부렸고, 바로 뒤로 장창(長槍) 부대 500명, 철포대(鉄砲隊) 300명, 궁대(弓隊) 200명이 따르고 있었다. 👶
무엇보다 철포대가 300이나 된다는 점이 미노의 살무사로 불리는 도산을 심히 경악시켰다. 도산 역시 앞으로의 전쟁에서 철포가 상당히 유리하게 활용되리라고 예견하고 있던 참이었다. 😨
그런데 아직 산전수전도 겪지 않은 약관(弱冠 20세)의 새파랗게 젊은 사위가 자그마치 철포대, 그것도 300명으로 구성시키다니! 🍇
압도적인 풍경에 도산은 경탄을 진심으로 자아내지 않을 수 없었다. 오금도 저렸음은 물론이겠다. 📱
그리고 회견장에서 노부나가님은 다시 예법을 갖춘 화려한 복장으로 도산을 대면한다. 그 자리에서 자신의 배포와 실력의 일단을 유감없이 발휘시킨다.
이 <쇼토쿠지의 회견 正徳寺の会見>을 재작년에 방영되었던 NHK 대하드라마 <기린이 온다 麒麟がくる> 14화는 박진감 넘치도록 이렇게 묘사한다. 👮
“오래된 중신들은 모두 이 자리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어째서?”
“이 얼간이 노부나가에게는 필요 없기 때문이지요.”👲
“허허, 얼간이라면 더욱더 중신들이 필요할 텐데. 중신들이 지켜주지 않으면 어떻게 일을 진행시킨다 말인가, 사위?”
“저에게는 삿사 나리마사(佐々成政), 마에다 도시이에(前田利家) 같은 가신들이 있습니다. 이 자들은 예외 없이 토호(土豪)의 삼남이나 사남에 지나지 않습니다.
즉 가문을 잇지 못하는, 기회가 없는 자들이지요.🍊 그러나 전쟁이 나면 그 누구보다도 더할 나위 없는 활약을 펼치는 일기당천(一騎当千)의 무사들입니다. 기회가 없는 자는 잃을 것이 없습니다.
그저 싸워서 가문을 만들고, 나라를 만들고,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것, 그 마음가짐으로 싸우기 때문이지요…… 🐢
아버지는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오다 가문은 원래 그리 대단한 집안이 아니라고요.🐬 에치젠(越前)의 시골구석에서 신관(神官) 노릇이나 했다던가. 혹은 다른 가문의 고용인에 지나지 않았다던가. 그런데 오와리로 나와서 벼락출세한 것이라고. 그러하니 저도 전부 제가 새롭게 만들 수밖에 없습니다…….” 🐞
쇼토쿠지의 회견에서 사이토 도산은 제대로 노부나가님의 기량을 파악할 수밖에 없었다. 기량이 없으면 여지없이 도태되는, 하극상의 시대를 무섭도록 휘어잡을 별격(別格)과 박력, 그리고 <실력의 소유자>를 자신의 눈으로 엄격히 확인한 도산의 감동은 깊디깊었을 테다. 🐎
그래서 회견이 끝난 뒤 탄식인지 혹은 탄복인지 모를 의미 깊은 말을 가신(家臣) 이노코 효스케(猪子兵助)에게 속절없이 건네고 말았다. 🌻
“내 자식들은 저 멍청이라 불리는 노부나가 밑에서 말(馬)이나 보살피는 신세로 전락될지도 모르겠다.”
사이토 도산의 눈은 엄정, 정확했다. 그 후의 오다 노부나가님의 형형한 활약이 이를 역설한다. 🐲
역시 어떠한 사안이든 입체적으로 파악하려는 노력은 긴요하면서도 매우 절실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이런 사례가 강력히 입증시키고도 남는다.
그때 사이토 도산이 섣불리 오판했더라면 시대의 진보는 더뎌졌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
누군가가 멍청이라 불리고 있다면 직접 그 진위를 두 눈으로 헤아리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理致가 그러하니, 21세기인 요즘이야 정보통신 미디어의 발달로 한 인물을 냉철히 바라볼 기회가 다양해졌다는 점에선 참으로 다행이라 할 수 있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