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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화루 김극기 시서

현재 태화루 창방에 붙어있는 고려 중기 시인 묵객 김극기가 쓴 시 태화루와 그 시의 서문인 시서를 번역해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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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克己詩序:“自鷄林南行,水迴山轉,窮日之力,至于海堧,有府曰興禮。

世傳 戒邊天神駕鶴降神頭山,主人壽祿,故或謂之鶴城。

城之西南 有江曰大和,江行六七里,溶溶漾漾,一碧萬頃,丹崖翠壁,倒影鏡中,如顧虎頭(고개지)之食甘蔗,路逾遠而境逾佳者,龍頭也。
枕龍頭而突起,西連鷲峯之巑岏,南臨鯨海之淼漫者,大和寺也。

昔 慈藏國師,新羅人也。貞觀十二年戊戌,浮舶而西,求法於中土。十七年,東還,泊于絲浦之地,因卜此地,立此寺焉。

觀 其 月殿、星宮,風亭、水榭,倚薄乎楓枏竹箭之上,掩映乎藻荇芙蕖之濱。

登斯樓也,則若倚畫屛下瞰一張氷簟,雖黿鼉之室,虎兕之場,煙波之所秘藏,霧雨之所埋覆,而康樂之屐齒,穆滿之馬跡,所不得搜抉者,莫不披天奧,露地藏,爭奇鬪巧,輻輳乎几案之前。則豈止緇塵境外,香花窟宅,足以頓龍象之甁屨哉?

觴詠之興,動得神助。故自東韓 王相君、西宋 謝商客鑱雲篆月,留詩以還,寥寥三百餘載,公卿士大夫及高僧、大隱咫尺遐壤,搜尋幽致,更倡迭和,紗籠滿壁,何其盛哉?云云。” 詩曰:
“寂寥林下寺,
高倚白雲阿。
北帶靑瑤嶂,
南襟綠簟波。

濺珠泉滴滴,
森戟石峨峨。
藓徑行降虎,
荷池坐護鵝。

炎光侵檻少,
爽籟入樓多。
飽得山中樂,
誰能更問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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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극기(金克己)의 시서(詩序)에 이르기를, “계림으로부터 남쪽으로 가서 물이 돌고 산이 바뀌어 하루 해를 다 가면 바닷가에 이르러 부(府)가 있으니 이곳을 흥례(興禮)라고 한다. 세상에서 전하기를, 계변천신(戒邊天神)이 학을 타고 신두산(神頭山)에 내려와서 사람의 수록(壽祿)을 주장했다 하여 혹 이곳을 학성(鶴城)이라 한다고 한다. 성 서남쪽에 강이 있으니 이것이 대화강(大和江)이며, 길이가 6ㆍ7리나 된다. 강물이 넘실 넘실하여 만경이 한결 같이 푸르고 붉은 언덕과 푸른 벽의 그림자는 마치 거울 속에 거꾸러지는 것이 고호두(顧虎頭)의 감자(甘蔗) 먹는 것과 같다. 길이 멀수록 경치가 더욱 더 아름다운 것은 용두(龍頭)이다. 용두를 베고 우뚝 일어나 서쪽으로 취봉(鷲峯)의 드높은 봉우리에 닿고, 남쪽으로 경해(鯨海)의 넓고 넓은 물결에 임한 것은 대화사(大和寺)이다. 옛날 자장국사(慈藏國師)는 신라 사람이다. 정관(貞觀) 12년 무술년에 배를 타고 서쪽으로 가서 중국에 법을 구하고 17년에 동으로 돌아오다가 사포(絲浦)에서 쉬면서 인하여 이 땅을 잡고 이 절을 세운 것이다. 그 월전(月殿)과 성궁(星宮)ㆍ풍정(風亭)ㆍ수사(水榭)를 보니, 풍남(楓枏)과 죽전(竹箭) 위에 의지하고 마름과 연꽃 있는 언덕에 가렸다 비쳤다 한다.

이 누각에 올라가면 마치 그림 병풍을 의지하여 아래로 한 장 얼음상자[氷簟]를 굽어보는 것 같아서, 자라와 악어의 집이나 호랑이와 들소의 장소에 연기와 물결이 비밀히 감춘 듯,
안개와 비가 덮은 것 같아서 강락(康樂)의 나막신 굽과 목만(穆滿)의 말발굽이라도 찾아내지 못하게 되어 있어, 어느 것이나 하늘의 깊은 것을 헤치고 땅에 감춘 것을 드러내서 기이한 것을 다투고 교묘한 것을 싸워서 책상 앞에 한꺼번에 몰려들지 않은 것이 없으니, 어찌 지저분한 티끌 밖에 향기로운 꽃나무 소굴이 족히 높은 용상(龍象)의 병(甁)과 신[履]을 주둔하는데 그칠 것이랴.

술 마시고 시를 읊는 흥이 신의 도움을 얻게 된다. 그러므로 동한(東韓)의 왕상군(王相君)이나 서송(西宋)의 사상객(謝商客)으로부터 구름에 새기고 달에 써서 시를 남겨두고 돌아간 후로 조용한 3백여 년 동안에, 공경대부와 고승과 위대한 은자들이 먼 지방을 지척같이 여기어 그윽한 경치를 찾아 서로 노래하고 서로 화답해서, 사롱(紗籠)이 벽에 가득했으니 얼마나 성한 일인가.” 하였다.

시에 이르기를,
“고요한 숲 아래 절이, 높다랗게 흰 구름 언덕 의지해 있네.

북쪽으로 푸르른 높은 봉우리 띠고, 남으로는 시퍼런 물결 둘렀네.

쏟아져 나오는 구슬 샘물 떨어지는 것, 장엄할손 창대 같은 돌이 높구나.

이끼 낀 길에는 범이 다니고, 연꽃 핀 못에는 오리가 노네.

찌는 햇빛 난간에 침노하지 않고, 서늘한 소리 누각 속에 들려 오는데, 산 속 즐거움 맘껏 많이 누리노니,

누가 능히 다른 것을 물으리요.”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