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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어둔 기념물 준공

(보도자료) 울주군 박어둔선양회
박어둔 안용복 기념물 준공
■울주군과 박어둔 선양회, 부산 한일문화연구소는 동해 지킨 박어둔 안용복의 포구 목도포에 기념물 세워  
■6월20일(월) 오후 2시 준공식
■장소 울주군 온산읍 방도리 산13(천연기념물 목도섬 앞)

1693년(숙종19년)과 1696년 2회에 걸쳐 울산 목도포를 출발해 동해 울릉도와 독도로 가서 동해를 침탈한 왜인들과 싸워 그들을 쫓아내고 두 섬을 우리땅으로 확보한 울산 출신 박어둔 안용복 님을 기리는 기념물을 울주군(군수 이선호)과 박어둔 선양회(대표 정토사 주지 덕진), 부산 한일문화연구소(소장 김문길)가 6월7일 오후 2시에 목도섬 앞 울주군 온산읍 방도리 산13에 세운다.

본 기념물은 철 간판으로 높이 120cm 폭 150cm 크기이며 내용은 박어둔과 안용복의 업적, 목도포가 동해로의 출발지였던 사실, 최근 일본에서 나타난 호패 자료(1690년 울산부와 동래부 발급), 박어둔 호적(1687년 울산부 작성), 우리 실록과 일본 죽도기사 내용(심문자료), 또 향후 독도를 지킬 논리와 의지 등이다.

또 1960년대 온산공단이 들어서기 전 목도포 사진과 호적 사진, 일본에 남은 두 분의 호패 사진도 들어 있다. 두 분의 호패는 당시 압수되어 일본 돗토리현립 박물관에 수장되어 있는데 호패 실물 사진은 우리나라에서 최초 공개되는 것이다. (당시 조선의 호패 기록 방식을 엿볼 수 있다)

경주박씨 박어둔은 증조부 가선대부 박잉석, 조부 통정대부 박국생, 부 정병 박기산으로 울산에서 처음 보는 고품계 가문이다. 이 희귀 고품계 가문은 1636년 충청도에서 일어난 유탁 권대용의 난 때(일명 안익신의 난 • 과도한 처벌로 이산현민들이 많이 장살되었음) 이산현(현 충남 논산시 노성면으로 소론의 발상지)에서 이거해 온 명가 가문이었다. 이산현에는 울산이씨들이 세거하였으니 울산과 모종의 관계가 있었다.

일본은 1905년 독도의 합법적 시마네현 편입을 근거로 국제사법재판소 제소를 주장하지만 당시 러일전쟁 직후 을사늑약을 강요하여 외교권을 빼앗고 외교권이 없어진 대한제국에 독도 편입을 통고할 의무가 사라졌으니 실로 대한제국으로부터 독도를 강탈한 것이다.    

당일 준공식 행사에는 목도 앞 현장에서 강학수 선양회 사무국장의 사회로 국민의례, 내빈 소개, 경과보고(이사), 덕진 선양회장 인사, 이선호 군수 축사, 김문길 한일문화연구소장 축사, 제막, 기념문 낭송(이사), 홀로아리랑 및 울산사랑가 태화강대밭(덕진 작시) 독창, 만세3창 순서로 진행된다. 노래는  유명 성악가 김명재(올해의 음악가 선정)씨가 독창한다.  

동해를 지키고 국토를 회복했지만 유배되어 먼 섬에서 사라져간 우리 울산의 영웅 박어둔 안용복 두분을 위해 그들의 고향인 이곳 울주군 온산읍 방도리 목도포에 기념물을 세우니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본 기념물 건립비용은 S오일에서 부담하였고 기념물은 전 KBS미술부장 원유빈 씨가 맡아 제작하였습니다)  
●연락처 박어둔 선양회 회장 덕진(정토사)
선양회 이사 이양훈(소설가)
선양회 사무국장 강학수(정토사)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