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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소 9마리

영국 귀족 자제들이 주로 가는 영국 최고
명문사학 중 하나인 이튼칼리지 출신 중에서

제1차 세계 대전에서는 5,619명이 참전해
1,157명이 전사했고, 제2차 세계 대전에서는
4,690명이 참전해서 748명이
전사했다.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은 1차 세계대전 중
고작 15세의 나이에 차량 정비 장교 보직을 맡았었고,여왕의 차남 앤드류 왕자는 포클랜드 전쟁에 전투기 조종사로 참전했다.

우리도 삼국 시대, 신라의 귀족 자제로 이루어진
화랑은 전쟁터에서 항상 가장 위험한 곳에서
목숨을 걸고 싸워야 했다.

김유신의 아들 김원술은 당나라와의 전투에서
패배했을 때 죽음을 각오하고 마지막 전투에
뛰어들려는 것을 부하 장수들이 김원술의
말고삐를 잡고 퇴각하여 살아 돌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 김유신은 병사들의 죽음을 뒤로하고 살아 돌아온 아들을 용서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대한민국에서 존경받는 독립운동가
김구 선생님의 차남 김신 전 공군참모총장을 비롯하여, 손자 김양 전 공군 보훈처장과, 공군 장교로 임관한 증손자 김용만 씨 까지, 김구 선생님의 후손은 3대에 걸쳐서 공군 장교로 임관하면서 나라와 국민을 위해 일했다.

이들은 왜 더 어렵고 힘든 일을 택했을까요?
그것은 자신만을 위해 부와 명예를 사용하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지를 너무도 잘 알았기에
자신의 욕망보다 주어진 명예와 헌신을
더욱 소중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끝없이 베풀면서도
만석꾼의 집안을 지켜온 부자들의 귀감이라 불리는 경주 교동 최 부잣집.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의 전신인
경성 의학전문학교를 마치고 일본 나고야대학에서 의학사 학위를 받은 엘리트였지만 평생 아프고 힘든 환자들을 위해 살다 간 장기려 박사.

독립운동가로 일하고 나라를 위한 사업가로 살다가 당시 407억 원, 지금으로 따지면 6천억 원이 넘는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유일한 회장.

이렇게 자신의 명예를 지킬 줄 아는 위인들의
모습을 통해 이 세상이 바르게 흘러갈 수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박정희처럼 집권을 위해 헌정 중던 쿠데타는 말이야 한다)

♥♥♥♥♥♥♥♥♥♥♥♥

우리나라의 한 의사가 아프리카의 어느 외진 마을에서 의료 봉사를 할 때에 외국에 가서 선진
축산 기술을 배우고 돌아온 현지 마을의 젊은
청년을 알게 되었다.

그 마을에는 독특한 결혼 풍습이 있었는데,
청혼할 때 남자가 암소를 끌고 처녀의 집에
가서 “암소 받고 딸 주세요.”라고 말을 하는
것이었다.

최고의 신부감에게는 암소 세 마리를,
괜찮은 신부감은 암소 두 마리를,
보통 신부감이면 암소 한 마리로도
승낙을 얻을 수 있었다.

어느 날 의사는 그 청년이 친구들과 함께
이웃 마을에 청혼을 하러 가는 광경을 보았는데 놀랍게도 이 청년이 몰고 나온 청혼 선물은 살찐
암소 아홉 마리였다.

사람들은 상대가 누구인지 궁금해하면서
술렁이기 시작하였다. 청년은 마을 촌장집도,
지역 유지인 농장 주인의 집도, 마을 부잣집도
그냥 지나쳤다.

한참을 걷더니 어느 허름한 집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 그 집 헙수룩한 노인의 딸에게 청혼을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딸은 너무 마르고 보잘것없는 여자였다.
암소 한 마리에 청혼할 상대에 불과한데 암소 아홉
마리를 데리고 간 것을 보고는

동네 사람들은 심지어 그 처녀가 마법으로
청년을 홀린 것이라고 수근대기도 했다.

그 후 의사는 의료 봉사를 마치고
본국으로 되돌아왔다.
오랜 세월이 지나서 의료 봉사차 다시 그 마을을 찾아간 의사는, 그 청년이 왜 아홉 마리의 암소를
몰고 보잘것없는 처녀에게 청혼을 했는지
궁금하였다.

큰 사업가가 되어 있는
그 청년에게 저녁 식사에 초대를 받았다.

의사는 청혼 선물로 아홉 마리를
건넨 이유를 물어 보았다.

그 청년은 빙긋 웃을 뿐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궁금증만 더 커져 갈 즈음에
찻잔을 들고서 한 여인이 들어 왔다.

유창한 영어와 교양미가 넘치는 미소까지
아름답고 우아한 여인이었다.

의사는 마음속으로
‘아! 이 사람이 그때의 보잘것없던
매마른 처녀 말고 다른 아내를 맞이했구나.’
라고 생각하였다.

그때 사업가가 천천히 말을 시작하였다.
“선생님, 저 사람이 그때 제가 청혼하였던
그 사람입니다.” 의사의 놀란 모습을 보고
그 젊은이는 말을 이어갔다.

“저는 어렸을 적부터 저 사람을 사랑하였고
저 사람과의 결혼을 꿈꾸어 왔습니다.

저희 마을에서는 몇 마리의 암소를 받았느냐가 여자들의 세계에서는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저도 그런 관습을 무시할 수 없어서
청혼을 위해서 암소를 몰고 갔습니다.

사실 제 아내는 당시 한 마리의 암소면
혼인 승낙을 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정말 사랑한 여인이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한 마리의 암소 값으로 생각하고 평생을 사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두 마리나, 세 마리를 받았던 다른 처녀들과 비교하면서 움츠려서 살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청혼 때 암소 몇 마리를 받았느냐가 평생동안
자기 가치를 결정할 수가 있기 때문에 저는
세 마리를 뛰어넘는 아홉 마리를 생각해
낸 것입니다.

결혼하고 난 뒤에 아내에게 공부를 하라거나
외모를 꾸미라고 요구한 적이 없습니다.

저는 있는 그대로의 아내를 사랑했고,
또 사랑한다고 이야기해 주었을 뿐입니다.

처음에는 무척 놀라던 아내가 곧 저의 진실을 받아들이기 시작하였습니다.

'혹시나 나에게 암소 아홉 마리의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을 하기 시작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 후 아내는 암소 아홉 마리에 걸맞는
사람으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내는 더욱 미모를 갖추고
지성적인 훌륭한 여성으로 변해갔습니다.

처음에 수근대던 동네 아낙들도 요즘은
제 아내의 아름답고 지성적인 모습을
사랑하고 존경해 줍니다.”

우리는 우리 가까이 있는 가족이나 친구나
또는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 소중한 사람들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고 소홀히 대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당신에게 소중한 사람들, 가족, 친구 그리고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에게...

최고의 가치를 부여하게 되면
최고의 고귀한 사람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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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목장을 찾았습니다.
주인 어르신과 얘기를 나눴지요.

"사슴이 몇 마리나 되나요?"
"289마리요."

"그럼 어르신 올해 연세가 어떻게 되십니까?"
"한 80넘었는데, 끝자리는 잘 모르고 산다오"

"아니, 사슴 숫자는 정확히 아시면서
어찌 어르신 나이는 모르십니까?"

"그거야 사슴은 훔쳐가는 놈이 많아서
매일 세어 보지만 내 나이야 훔쳐가는 놈이
없어서 그냥저냥 산다오."

나이란 전국민이 자동으로 매년 한 살씩 먹는 겁니다.

어떤 사람은 욕심이 많아서
서너 살씩 더 먹는 사람도 있지요.
어떤 사람은 맘이 착해서 서너 살씩
뚝 떼어서 남에게 그냥 주는 사람도 있어요.

같은 나이인데도 더 늙어 보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젊어 보이는
사람도 있지요.

장수마을에 갔더니
105세 어르신이 계셨습니다.
"장수 비결이 뭡니까?"
"안 죽으니깐 오래 살지!"
"올해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다섯 살밖에 안 먹었어."
"네? 무슨 말씀이신지…."
"100살은 무거워서 집에다 두고 다녀."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생각이
장수의 비결이란 말이지요.
105세 어르신과 시골 장터를 걷는데,
앞에서 90세가 넘어 뵈는 할머님이
걸어오십니다.

"어르신, 저 할머니 한번 사귀어 보시죠?
한 70쯤 되어 뵈고 예쁘시구먼."

"뭐야? 이놈이….
저 늙은 할망구 데려다 뭔 고생하라고."

그렇습니다.
할머님이 그 얘길 들었으면
자살하셨을지도 모를 일이지요.

전 그 장수 어르신의 끝 말씀이
제 생활의 지표가 되고 도움이 됩니다.
"저, 어르신.
105년 살면서 많은 사람들이
어르신 욕하고 음해하고
그래서 열 받았을 텐데,
그걸 어떻게 해결하고 이렇게
오래 사세요?

우리 같으면 못 참고 스트레스 받아서 죽었을 텐데요."

그랬더니 너무나 간단한 답을 주셨다.
"그거야 쉽지.
욕을 하든 말든 내버려뒀더니
다 씹다가 먼저 죽었어.
나 욕하던 녀석은 세상에 한 놈도 안 남았어."

자비를 베풀어라

자비는
"믿음의 표현"입니다
"인격의 표현"입니다
"성숙의 표현"입니다
"사랑의 표현"입니다

하늘에 구름이 잔뜩 낀 어느 날 오후,
갑자기 비가 세차게 내렸습니다.

길에 있던 사람들은 가까운 상점으로 들어가 비를 피했습니다. 온몸이 흠뻑 젖은 한 할머니가 비틀 거리며 한 백화점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많은 종업원들은 비에 젖은 노인의 모습을 보고도 외면했습니다.

할머니의 옷차림이 누추했기 때문입니다.

이때 "필립이라는 젊은이가" 할머니에게
친절하게 다가가 말했습니다.

할머니 제가 도와드릴 일이라도 있습니까?

할머니는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괜찮아요.
여기서 잠깐 비를 피하고 갈거예요.

할머니는 남의 건물에서 비를 피하고 있자니
미안한 마음에 백화점을 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머리핀이라도
하나 사면 비를 피하는 일이
좀 떳떳해지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입니다.

할머니의 표정을 살피던 필립이 또 다가와서 말했습니다.

할머니, 불편해하실 필요 없습니다.

제가 의자를 하나 가져다 드릴테니
그냥 앉아서 쉬시면 됩니다.
두 시간 뒤 비가 그치고 날이 개었습니다.

할머니는
다시 한 번 필립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는

명함 한 장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고는 비틀거리며 비 갠 후 무지개 속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몇 달 후 이 백화점의 사장 제임스는
편지 한 통을 받았습니다.

바로 그 할머니가 쓴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놀랍게도 당시 "미국의 재벌인"강철 왕
"카네기의 모친" 이었습니다.

편지에는 "필립"을
스코틀랜드로 파견하여
한 성루를 장식할 주문서를 받아가게 할 것과,
그에게 카네기 소속 대기업들이 다음 분기에 쓸
사무용품의 구매를 맡기겠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제임스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계산해 보니 이 편지 한 통이 가져다 줄 수익은
백화점의 2년 이윤 총액을 웃돌았습니다.

제임스는 바로 필립을 회사의 이사회에 추천했습니다.

필립이 짐을 꾸려 스코틀랜드로 가는
비행기를 탔을 때, 이 스물두 살의
젊은이는 이미 백화점의 중역이 되어 있었습니다.

몇 년 동안 필립은 자신이 늘 보여주었던
선의와 성실함으로
카네기의 손과 발이 되었습니다.

필립은 카네기 가에 공을 세워 이름을 떨쳤으며,
100곳에 달하는 전국의
도서관에 800만 권의 도서를 기증하여

많은 젊은이에게 귀감이 되었습니다.

푸른잎도 언젠가는 낙엽이되고
예쁜꽃도 언젠가는 떨어집니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오늘 이 시간도다시 오지 않습니다.

영웅호걸 절세가인도 세월따라 덧없이 가는데
우리에게 그 무엇이 안타깝고 미련이 남을까요...
누구나 그러하듯이 세월이 갈수록 곁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 둘 씩 떠나가고, 남은 사람들 마저 세상과 점점 격리되어 외로워집니다.

이별이 점점 많아져 가는 고적한 인생 길에
서로 서로 안부라도 전하며, 마음
함께하는 동행자로 인하여 쓸쓸하지 않은 나날들이 되시기를 나이들어
외롭지 않은 행복한 삶을 사는데,
활력적이고
적극적인 활동이 대안입니다.

세월 앞에 그 누구도 예외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