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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연의 일화

(( 김동연 前 장관의 일화 ))
★그는 2013년 국무조정실장으로 재직할 때,
28세이던 아들이 백혈병으로 사망하였는데
아들 장례식 당일에 업무에 복귀해
당시 국조실이 만든 ‘원전비리 종합대책’을
직접 발표했다.
,
그는 당시 주변에 아들의 투병 사실도
알리지 않았고,
아들의 부고조차 내지 않고
부의금도 받지 않았다.
★★
김동연 아주대 총장이 경제부총리 내정자로
지정된 이후, 학내에서는 김 총장이 임기 도중에
학교를 떠나 아쉽다고 입을 모았다.
익명의 한 학생은
"총장 임기 시작과 동시에 여러 활동을 통해
학생들과 함께하고 학생들의 뜻을 존중하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며
"마땅히 보내드려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아쉽기도 하다"
고 했다.
채 아주대 총학생회장은
"김 총장님은 학생들이 더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글로벌 인턴쉽, After you, 파란학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며
"한 달에 한 번씩 브라운 백 미팅을 열어 학생들과
점심을 함께 먹으며 건의사항을 직접 듣는 등
항상 소통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정영기 아주대 교수회장은
"총장이 나라의 중책을 맡아 학교의 위상을
드높이게 될 것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동시에
총장이 임기를 채우지 못해 떠나게 돼 아쉽다는
지적도 있다"
고 전했다.
●●●
김동연은 아주대 총장에 재임한 2년 동안
장학금 등으로 1억4천만원을 기부한 것으로 나타났다.
2년 동안 3억5천만원을 받은 김 후보자는 급여의 40%가량을 소외 계층을 위해 기부했다.
★♥
충북 음성 출신인 김 후보자는 11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청계천 무허가 판잣집에서 자랐다. 소년 가장이었던 그는 덕수상고를 다니던 17살에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한국신탁은행에 취직해 홀어머니와 세 동생을 부양했다. 김 후보자는 8년간 야간대학인 국제대(현 서경대)에 다니며 법학을 전공했고, 1982년 행정고시(26회)와 입법고시(6회)에 동시에 합격해 1983년 3월 현재는 기획재정부에 통합된 옛 경제기획원(EPB)에서 공직을 시작했다. 후보자는 치밀하고 집요한 일처리로 명문고·명문대 출신 엘리트 관료가 수두룩한 경제부처에서 두각을 나타내 경제기획원이 기획예산처, 기획재정부로 변하는 동안 요직을 두루 거쳐 장관급인 국무조정실장에까지 올라 ‘흙수저 신화’를 썼다.
★♥★
국무조정실장 재직 시 부처 간 칸막이 제거와
협업체계를 마련했고 아주대 총장으로서 파란학기제 도입, 애프터유 프로그램을 추진해 창의적 인재를 양성하고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고 평가했다
♥♥♥
.한국경제신문이 7일 각계 전문가 14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김동연 부총리는 청와대 및 행정부 경제라인 업무 평가(10점 만점)에서 10명 가운데 가장 높은 7.01점을 받았다. 정책현실감각, 리더십, 업무수행능력, 직무적합성 등을 종합한 평가 점수다.
평가 대상 중 7점을 넘긴 이는 김 부총리가 유일하다.
김 부총리는 취임 초 ‘이번 정권에 지분이 없어 목소리를 내기 힘들 것’이라는 관측과 함께 ‘패싱’ 의심까지 받았다. 그러나 정권 초기 청와대 참모들이 주도한 소득주도성장 일변도의 경제정책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혁신성장으로 일부 선회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은 덕에 전문가들로부터 상대적으로 후한 점수를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