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상도 일대에 전해지는 조선 후기의 명관 고유(高裕)에 관한 설화.
★ 역사
고유(1722~1779)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친시(親試) 제술과에서 장원을 하여 인재로서 주목을 받아 병조좌랑 등 내직에 머물다가 창녕현감, 안주목사(安州收使), 경상도사(慶尙都使) 등 외직을 거친 뒤 내직에 들어와 승정원 부승지에 올랐던 인물이다.
그는 생전에 후손이나 주위 사람들에게 자기 문집조차 발간하지 못하도록 하여 그에 대한 문헌기록은 정범조(丁範祖)가 지은 『묘갈(墓碣)』이 유일하고, 그것과 비슷한 내용이 『기문총화(記聞叢話)』와 『동야휘집(東野彙輯)』 등에 기록되어 문헌설화로 전한다.
그의 치적은 칭송을 받을 만한데, 오히려 기록이 많지 않아서 설화로 풍성하게 전승되는 것 같다.
그는 첫 지방관인 창녕현감 때에 선정을 베풀고 명재판을 한 것이 널리 알려져서 고창녕이란 별명을 얻게 되었다. 그에 관한 설화는 18세기 이후부터 창녕을 중심으로 한 경상도 일대에 <치자담(治者譚)>, <명관설화>, <송사설화>로 유포·전승되었다고 보인다.
♥ 줄거리
<고유설화>는 단편적인 삽화를 이야기하거나 두세 개의 삽화를 연속하여 구연하는 경우가 많다. 그의 행적 중 치적담은 다음과 같다.
옹기장수가 바람 때문에 옹기를 깨뜨린 뒤 살길이 막막해서 고유에게 소지(所志)를 올리자 배가 잘 다니게 순풍을 달라고 풍신제를 올린 뱃사공들에게 옹기 값을 물어주게 한 기발한 판결 이야기가 있으며, 날아든 나뭇잎을 보고 그 근원을 추적하여 살인자를 잡아 겁탈당한 뒤 억울하게 죽은 원혼을 위로하는 등 지혜로 사건의 원인을 밝히고 문제를 해결하는 이야기가 있다.
또한 귀중한 물건을 훔친 도둑을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잡는 등 대부분 기지로 문제를 해결하여 백성을 구원하는 내용이 전개되고 있다.
● 변이
<고유설화>는 행적담 외에 벼슬하기 전의 일화를 다룬 성장담도 전한다.
그런데 그 과정이 영웅적 인물을 다룬 일반적인 설화와 달리 신이적 요소가 제거된 합리적 질서에 의해 전개된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고창녕이 과거를 보러 가다가 아름다운 처녀를 보고 희롱하려고 했지만, 처녀의 재치에 답을 하지 못했다.
고창녕은 그길로 곧장 집으로 돌아와 더욱 열심히 노력해 과거에 급제하였는데, 알고 보니 그 처녀는 산신이었다. 둘째, 머슴 하나를 데리고 살던 과부가 머슴이 징병을 당하게 되자 소지를 부탁하러 가던 중 어린 고창녕을 만났다.
고창녕이 “천 명 군사의 한 졸병은 천 마리 소의 한 털이요, 과부의 한 노비는 열 소경의 한 지팡이라(千軍之一卒 千牛之一毛 寡婦之一奴 十盲之一杖)”라고 소지를 작성해 머슴의 징병을 면해 준다. 문헌기록에도 고유가 선정을 베풀고 명판결을 하였기 때문에 고창녕이라 불렸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구비설화에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고창녕 덕에 부자가 된 하인이 몰락한 고창녕의 손자에게 은혜를 갚는다는 이야기가 있다.
●● 분석
그간 <고유설화>와 관련된 논의는 주로 구비전승의 자료를 대상으로, 설화의 유형적 특성과 전체적 전승 양상을 밝히는 기초적 연구가 중심이었다. 이것은 <고유설화>가 주로 경상남도 지역에서 전승된다는 지역적 제한성과, 단편적인 사건담과 사건의 연속체 형태로 전승된다는 형태적 특징 때문일 것이다.
고유는 인물됨이 비범해서 젊은 시절부터 인재로 주목을 받았고, 청렴결백하여 명관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백성들의 곤궁한 삶을 구제하기 위해 경세치민에 힘을 쏟았기 때문에 풍성한 설화가 형성되었다.
창녕현감으로 있을 때에는 안찰사 조암이 민폐가 심하다는 이유로 조창(漕倉)의 신설을 허락하지 않자 그가 조정에 글을 올려 윤허를 얻어 조창을 건축하였다. 이 일로 곡식을 운송하는 노고를 덜게 된 읍민들이 모두 그를 칭송하였다고 한다.
또, 안주목사로 있을 때에는 백성들에게 잠농(蠶農)을 권장하였고, 허호(虛戶) 7천을 폐지하고 고을의 조세를 감하여 백성들이 모두 그를 칭송하였다고 한다.
<고유설화>는 정사에 등장하는 실존했던 명관이 야사에서 초월적 인물로 영웅화되어 전승되는 대표적인 구비전승이라 하겠다.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광포설화인 어사 박문수의 순행이나 숙종의 잠행에 얽힌 이야기는 임금이나 목민관이 어려운 처지에 빠진 백성을 구해 준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고유설화> 역시 이러한 유형에 속하는데, 고유가 경남 출신이 아님에도 임지인 경남 지역과의 관계 속에서, 부당하게 억눌리는 백성의 원성을 풀어 줄 구원자에 대한 민중의 소망이 투영되면서 지역적 영웅으로 형상화되었다는 점이 특이하다.
☎ 특징
출생담에서 성장담, 그리고 행적담으로 이어지는 인물전설의 과정들은 상호 인과적 관계에 의해 유기적으로 작용한다. 출생담에서 인물의 신이적 요소가 강하게 드러날 경우 성장담 또한 거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며, 행적담의 모든 사건들은 출생담, 성장담과 연관성을 지니며 전개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러나 <고유설화>는 이러한 유형과는 판이하게 다른데, 신이한 출생담이 한 편도 없다.
그 이유는 고유가 18세기에 활동한 인물이므로 출생에 있어 신이적 요소가 가미될 만한 사회적 여건, 즉 설화 향유층의 신화적 인식이 희박했기 때문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성장담과 행적담에서도 신이한 요소는 등장하지 않고 있다.
이는 민족적 영웅을 다룬 설화가 신이적 요소를 토대로 한 신화적 질서에 의해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에 반해, 중세에서 근세로 이어지는 이행기의 지역적 영웅으로서의 위상을 지닌 인물설화는 합리적 질서에 의해 이야기가 구성된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이라 하겠다.
★♥ 의의
관장(官長)은 뛰어난 지혜와 판단력을 갖추고 민중의 고충을 합리적이고 명쾌하게 해결해 주어야 한다. 현실에서는 야욕에 찬 관장이 가렴주구를 일삼거나, 미숙하고 무능한 관장 아래에서 아전이나 권세가의 횡포가 극심한 경우가 많았다.
이와 달리 <고유설화>는 기발한 착상으로 통쾌하게 사건을 해결하는 애민적인 관장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향유층인 백성들의 희망을 투영하고 현실을 비판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설화 속에 보이는 고유의 문제 해결 방식이 다소 비현실적이고 억지스러울지라도 명쾌한 판결로 향유층의 답답한 심정을 시원하게 풀어 주는 기능을 하고 있다.
♡♥★
참고문헌
고창녕설화 연구(장민석, 동아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5년)
고창녕전설 연구(정상박, 국어국문학17, 동아대학교 국어국문학과, 1998년)
전설의 사회사(정상박, 민속원, 2000년)
♥ 집필
정상박(鄭尙圤)/동아대학교
★ 출처
國朝榜目
記聞叢話
東野彙輯
英祖實錄
正祖實錄
한국구비문학대계(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0~1988) 7-15, 414; 8-2, 25; 8-4, 86; 8-7, 396; 8-8, 578; 8-10, 81.
출처 출처 도움말확장영역 접기
한국민속문학사전(설화 편)
http://folkency.nfm.go.kr/munhak/index.jsp
제공처
국립민속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 로고
http://www.nfm.g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