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나이 5살 때 식당일을 하고 오던 엄마가
음주운전차에 치어 세상을 떠난 뒤
아버지 홀로 지금껏 눈물로 저를 키워 주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남들보다 작고 왜소한 아버지가
창피했기에 학교에 도시락을 가지고 오는 것도 싫었고
함께 다닌 적도 없었습니다.
아빠가 늦게 마중을 나가
엄마가 그렇게 된 거라는
원망의 눈길까지 보태어지면서....
그런 아버지를
용서하고 사랑하게 된 게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가지 않고
헌책방에 가기 위해 낯선 길을 걸어가고 있을 때 저 멀리에서 본 아버지의 모습부터였습니다
정류장에 있는 사람들이
소나기에 황급히 버스에 오르면서
길바닥에 버린 전단들을
그 작은 몸으로 견디며 하나하나 다시 줍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았 을 때부터였습니다
책방에 다녀온 저보다
먼저 집으로 온 아버지는 늘 말쑥한 모습으로
제가 오면 차려줄 밥과 반찬을 만들고 계셨지요
“아빠…. 오늘 어디 갔었어?”
“어….비도 오고 해서 종일 집에..."
“아빠...내일까지 선생님께서 급식비 가져오래.”
어느 날, 수업을 하고선
집으로 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는데
펭귄 인형이 전단을 나눠주고 있는 모습이
신기해 바라보고 있을 때
어디서 한 움쿰 몰려온 아이들이
펭귄을 발로 차고 주먹으로 때리는 통에 펭귄은
결국 길바닥에 쓰러져 버렸고 깔깔거리며 사라져간 아이들이 준 아픔을 딛고 억지로 일어나 구겨진
골목 안 담벼락에 앉아 펭귄 탈을 벗고 있는 모습을 보며
“설마…. 아버지는 아니겠지”
맙소사, 그가 아버지였습니다.
저가 집으로 돌아온 뒤,
한참 후에야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를 보며 저는 철이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아빠. 식사하세요“
“오다가 먹고 왔어”
딸에게 상처 난 모습을 보이기 싫어 마주 앉기
싫어하는 아버지의 속내를 안 저는 식탁에 차려놓은
채 불을 끄고 제방에 들어간 얼마 후
달그락거리는 그릇 부딪치는 소리가 나고 불 꺼진 제 방문을 열고 들어와 책상에 놓고 간 하얀 봉투엔 학교급식비가 들어있었습니다.
어느 날,
버스정류장에 왔을 때 험상궂은 아저씨들이
아빠에게 달려들며 손지갑을
뺏으려는 모습에 바람같이 달려들며
“우리 아빠한테 왜 그래요
경찰 아저씨에게 신고할거예요….“
라며 전화기 버튼을 누르려는 모습에
뿔뿔이 그들이 흩어져간 뒤
“은지야.덩치 큰 아저씨들한테 덤비다 다치면
어쩌려고 그래 안 무서워?“
“아빠가 있는데 뭐가 무서워”
어느날,
밑창이 떨어져 까만 양말이 삐져나온 아버지 모습에
제 눈길이 머물때 아버진 헤어진 제 신발을 보고 있었죠.
“딸자식 하나 있는 거 운동화 하나도 제대로 못 사주고…“
“가난해도 괜찮아. 아빠가 있는데.”
다음 날 아침
아버지는 제 손을 잡고 시장 안 신발 집에서 꽃무늬가 새겨진 예쁜 운동화를 사주셨지요
밤새 머리맡에 올려놓고는 자다가 눈떠서 쳐다보고 또 쳐다보는 제모습에 구름 미소를 짓고 계시던 그 다음 날
“은지야... 이게 뭐냐 ?
웬 새 신발이 여기 있어?“
“아빠. 내가 아빠에게 주려고
아침 일찍 신발 집에 갔다 온 거야”
아버지는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다
“너 신발은?”
두 손을 뒤로한 채 싱긋이 웃고 있는 저를 보며
알았다는 듯 그 미소가 눈물로 변해가는 걸
보며 전 말했죠.
“아빠 신발도 구멍이 났잖아?”
아빠와 제 눈에 흐르는 눈물이
마르기까지는 3일이 걸렀습니다
저는 시집을 갔고
준이가 자라 돌잔치 하던 날
뷔페에 온 아버지가 창피스러웠는지 눈길 한번 주지 않는 시어머니의 모습에 화가 난 저는 화장실에서 눈물 흘렸고
말없이 다가온 아버지는
흐느끼는 제 어깨에 두 손을 얹으며
“괜찮다. 이 아빤 아무 신경 쓰지 말고 살어...“
그 말과 함께 돈봉투 하나를 손에 쥐어 주고 나가 버린 아버지였지요.
추석 이틀 뒤 아버지의 생신이고 해서
친정에 가려는 저를 붙든 시어머니가
“출가외인이 왜 친정에 가니? 갈려면 이혼하고 가라"는 시어머니 말에...
“아빠…….
시어머니가 아주 편찮으셔서
생신 때 못 내려갈 것 같아요”
“아니다…. 난 신경쓰지 말어....
그리고 빨리 시어머니 병원으로 모시고 가"
그렇게 끝난 전화기를 붙들고
한없이 흐르는 눈물을 화장실 세면대에 흘려 놓고 봄볕처럼 야위어만 갔었죠
어느 날, 저는 결국 친정행을 택하고 말았지요
“아버지… 시어머니께서 고생했다고휴가를 주셨어요 “
하지만 시집살이에 지친 저는
몸이 아파 링거를 맞다 잠들었고 전화벨이 울리는 제 휴대전화기를 머뭇거리다 받은 아버지가
“아이고 사돈….”
이란 말 한마디 먼저 던져놓고는
한참을 들고 계시다 떨어지는 눈물과 함께 전화기를 내려놓은 사실을 모른 채
전 계속 아버지에게 거짓말을 하였지요
질퍽한 시집살이에 지쳐
세월을 잃어가는 저를 보며
'내 자식 잘못 키워 남의 자식 힘들게 하면 안 된다'며
늘 제게 남편과 시어머니에게 잘하라는
그 말밖엔 하신 적이 없었던 당신...
제 앞에서 단 한번도 자신이 먼저 운
적이 없었던 당신은
언제나 딸에게 당신의 슬픔이 전해질까
늘 웃음 짓고 계셨지요
“아버지 요즘 왜 전화 안 하세요?”
“그냥 요즘 내가 바빠...”
저 살기 바빠 홀로 계신 아버지를 내팽개쳐 놓은 채 무심히 하루 하루가 훌렀습니다
아버지ㅡ
당신이 돌아가신 후에야 별세를 알게 되었습니다
잦은 병원비로 돈이 떨어진 당신은
휴대전화기가 3개월 전부터 정지된 사실을 감춘 채
텅 빈 냉장고, 쌀 한 톨 없는 빈 쌀통,
잔액 없는 통장을 지금 제 앞에 남기고서....
어느날 아버지는 말씀하셨죠.
"아버지도 꿈이 있던다."
“어떤 꿈?"
“훌륭한 아빠가 되는 게 아빠의 꿈이란다”
딸밖에 채울 수 없었던 아버님,
살아갈수록 더욱 그립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