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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무환

유비무환 ● (5월1일 실버 방송)

고전 이야기입니다. 향토사학자 이양훈 님이 고전 속의 교훈을 들려 드리겠습니다. 안녕하세요~

1. 오늘은 어떤 얘기를 하시겠습니까?

(이) 오늘은 유비무환에 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2. 유비무환, 너무도 유명한 말이지요. 미리 준비하여 앞으로 일어날 우환을 대비한다는 말로 압니다. 그런데 이 말은 동양고전서 어디에 나옵니까?

(이) 중국사서 상서와 춘추에 나오는 말입니다.

3. 상서부터 설명해주시죠.

(이) 상서는 달리 서경이라고 합니다. 사서3경 중에 하나죠.

상서는 우(虞), 하(夏), 상(商), 주(周)나라 같이 중국 고대국가의 역사서인데 진시황의 분서갱유로 인해 불타고 후대에 복원된 책입니다. 이 상서에 나오는 유명한 말로 유소준비 불회생화(有所準備 不會生禍)가 있습니다.

즉 준비가 되어 있으면 화를 당하지 않는다 라는 말이고 또 이 서경의 ‘설명중’ 편에는 「유사사 내기유비 유비무환」(惟事事 乃其有備 有備无患)이 있습니다. 이 뜻도 일마다 미리 준비하면 미래의 우환을 막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최초로 나온 유비무환 성어인데 연대로 따지면 기원전 2500년경이니 지금으로부터 약 5천 년 전입니다.

4. 그러면 춘추에 나온 유비무환은 뭡니까?

(이) 공자가 지은 춘추의 유비무환은 2500년 전 춘추시대 춘추오패인 누를 진자 晉나라 인물로서 진나라를 건국하고 춘추오패로 올리는데 크게 기여한 인물 위강이 한 말입니다.

그는 모시는 주군에게 늘 올린 말이 유비무환이었습니다. 원문은 「거사안위 사즉유비 유비무환」(居安思危 思则有备 有备无患)입니다.

즉 편안할 때 위기를 생각하고 준비하면 나중에 어떤 환란도 없을 것이다 입니다.

5. 그러나 유비무환을 지키지 않아 어려움을 많이 당했지요?

(이) 그렇습니다. 과거 나라와 나라 사이에서 전쟁은 유비무환이 없는 곳에서 일어납니다. 적국이 유비무환을 잘 하고 있으면 엿볼 염을 내지 못합니다.

평소에 군사훈련을 철저히 하고 병장기를 갖추고 신민이 단결하여 있으면 절대 쳐들어가지 않습니다. 허점이 엿보이면 들어갑니다. 이는 우리 최근의 625전쟁 발발 때도 마찬가지고 지금 현대전도 그렇습니다.

6. 유명한 손자병법에도 많이 나와 있겠군요?

(이) 그렇습니다. 손자병법 여러 곳에 유비무환이 나옵니다. 그 중 하나가 「무시기불공 시오유소 불가공야」(無恃其不來 恃吾有所 不可攻也)입니다. 그 뜻은 「적이 쳐들어 오지 않을 것이라 믿으려 말고, 적이 들어와도 이기지 못할 것을 적이 믿도록 하라」는 말입니다.

즉 적이 싸워 자군에 출혈이 많은 것을 믿게 하면 부전이 굴인지병이라, 즉 싸우지 않고도 굴복시킬 수 있습니다.

7. 유비무환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유비무환 책으로 가장 강력한 것은 상하 한마음입니다. 손자 제3 모공 편을 보면 「상하동욕자승 이우대 불우자승」(上下同欲者勝 以虞待 不虞者勝)이 있습니다.

즉 상하동욕자, 상하가 분열하지 않고 같은 뜻을 지니면 이기게 되고, 우대, 즉 우려하여 대비하는 자는 방심하여 대비하지 않는 자에게 늘 이긴다고 했습니다. 단결하고 대비하면 어떤 적도 이깁니다.

이번에 찾아온 코로나 사태도 단결하여 이기고 미리 대비했으면 반드시 이깁니다. 이것은 국가나 기업이나 개인이나 같습니다.

8. 그런 사례를 우리 역사에서 찾아보면 있을까요?

(이)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임진왜란을 들 수가 있습니다. 임진왜란 이전에 전쟁이 난다고 소문이 무성했고 우리 통신사까지 살펴보려고 갔지만 통신사 간에도 동인 서인 분열이 일어나 다투었습니다.

나중 선조에게 보고할 때 당파 탓에 말이 서로 엇갈리자 손자병법에 나오듯 恃其不來(시기불래)라, 오지 않을 것을 간절히 믿고 싶었던 선조는 전쟁이 없다고 단정하였습니다. 그러나 전쟁이 꼭 일어날 것으로 믿은 분들이 있었습니다. 누구였을까요?

9. 이율곡인가요?

(이) 이율곡도 전쟁 가능성을 믿고 10만양병설을 주장했죠. 이는 의견이었고 정작 전쟁준비를 치열히 하신 분들이 계셨으니 바로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 울산의병들이었습니다.

충무공은 판옥선을 준비하고 대포를 개발하고 병사들을 부지런히 조련했습니다. 충무공은 위기의식을 지녔기에 전라좌수영에 부임하자마자 서둘러 전쟁 대비를 했습니다.

10. 충무공이 그렇게 준비하지 않았다면 어찌 되었을까요?

(이) 충무공이 준비하지 않았다면 초전에 경상도에 이어 전라도까지 무너지고 조선은 왜병에 완전히 점령되면서 선조는 중국으로 완전히 내뺐을 것입니다.

호남이 온존되므로 곡식이 수확되고 백성들이 모두 굶지 않았습니다. 또 호남 백성들이 수군에 충용되므로 전투력을 이어나갔지요.

나중에 충무공은 선조에게 붙잡혀갔지만 겨우 풀려나자 “저에게 12척의 배가 아직 있고 저가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말하고 명량해전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11.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 발발을 어찌 미리 알았을까요?

(이) 그것은 당시에 왜구에게 붙잡혀갔다가 탈출하여 돌아오는 사람들이 전라좌수영에 많이 들어왔습니다. 그들의 얘기를 유심히 듣고 전쟁이 확실하다고 여겼습니다.

당시 조정은 왜군이 수전에 능하니 수군을 없애자고 하였지만 충무공은 이에 반대하고 오히려 거북선을 만들었습니다.

12. 울산의병장들도 임진왜란 발발을 미리 알고 있었던가 보네요?

(이) 그렇습니다. 울산은 일본과 가까운 곳입니다. 염포왜관이

염포에 있기도 하여 임진왜란 이전에 왜사들이 염포로도 왔고 울산어부들이 자주 일본 쪽으로 표류했다가 돌아와서 일본 정보에 밝았습니다.

임진왜란이 4월13일에 발발하자 8일 뒤인 21일에 기박산성에 울산유지 심환 박응정 고처겸 박진남 이한남 김응방 여섯 분이 모였습니다.

이분들은 각 문중 대표로 심환은 청송심씨, 박응정은 울산박씨, 고처겸은 제주고씨, 박진남은 고령박씨, 이한남은 학성이씨, 김응방은 김해김씨로 의병창의를 결의하고 무과출신자들을 찾아 모셨으니 박봉수 서인충 윤홍명 박홍춘 이런 분들입니다.

그 뒤에 군사를 모으고 경주의병들의 협조도 받아 5월5일에 병영성을 탈환했습니다.

13. 관련기록은 어디에 나옵니까?

(이) 의병장 이경연의 제월당실기와 경주의병 견천지의 송고실기에 상세히 나옵니다. 이 쾌거가 조선왕조실록에는 실리지는 않았는데 조정이 경황이 없었습니다.

임란 승전기록으로 정사에 실린 것은 일부뿐입니다. 사실 이 의병장들이 금방 모여 창의할 수 있었던 것은 조정의 무사안일과는 달리 평소 유비무환을 잊지 않으셨던 때문입니다.

울산유지들은 그 전에 불국사약회 등 여러 우국모임을 통해 나라를 걱정하고 미래 전란을 예상하고 싸울 준비를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