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산제일일보를 보니,
금년 국보 147호 천전리 각석 발견 50주년을 맞아 모 단체에서 사진첩을 발간했다.
지금까지 많은 명문 연구가 있었지만, 최근 새로운 학설들이 등장했다
각석 원명 연구 신 논문에 따르면, 524년(법흥왕 11년)에 여기에서 법흥왕과
금관가야 구형왕이 만나 회동하였다.
당시 백제와 왜의 강박 속에 어려움이 컸던 가야 구형왕은
신라에 통합할 뜻이 있었고, 구형이 청해 법흥을 만났으니 그 장소가 여기
천전리각석이었다.
여기에서 각석 회합이 잘 되어
8년 뒤인 532년에 가야는 냐라를 신라에 합하였다.
신라는 524년 회담을 기념하여 이듬해 525년에 각석에 새겼으니 바로 원문이었고, 원문 명문 속의 여덕광묘에서 여덕=법흥왕, 광묘=구형왕이었다.
(각석 원명 - 525년 새김)
過去乙巳年六月十八日昧沙喙」部
乙巳年」
沙喙部葛」
文王覓遊來始淂見谷」
之古谷无名谷善石淂造書」
△以下爲名書石谷字作之」
幷遊友妹麗德光妙於史」
鄒女郎王之」
食多煞作功人尒利夫智奈麻」
悉淂斯智大舍帝智作食人」
榮知智壹吉干支妻居知尸奚夫人」
眞宍智沙干支妻阿兮牟弘夫人」
作書人慕慕尒智大舍帝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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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석 추명 - 539년 새김)
徙夫知葛文王妹於史鄒安郎」三共遊來以後▨年八巳年過去妹王考」妹王過人丁巳年王過去其王妃只沒尸兮妃」愛自思己未年七月三日其王与妹共見書石」叱見來谷此時共三來 另卽知太王妃夫乞」支妃徙夫知王予郎深▨夫知共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