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관순 열사에 대해 알아봅니다.🍐🍻
1902년 12월 16일 충남 천안시 병천면에서 유중권 이소제 부부의
둘째 딸로 출생하였다.⭕🌴
1916년 이화학당 보통과 고등과정 입학. 1919년 아우내 장터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하다가 아버지 유중권은 일제 헌병의 총검에 찔려 끝내 숨지고 본인은 왜경에게 체포 당해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징역 3년형을 받았으나 법정 모독죄가 추가되어 7년형으로 늘어나고
교도소 안에서도 시위계획을 세우다가 발각되어 혹독한 고문을 당하였다.⛺🍮
일제의 모진 고문의 후유증으로
1920년 9월 28일 결국 옥사하였다.🍻🗻
옥사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시신의 인도를 요구하지만
일제는 고문 사실이 드러날까 봐
인도를 거부하였다.🌕🗻
이 소식을 접한 이화 학당의
프라이 교장은 국제 여론에 호소하며
시신 인도를 요구한 끝에
그 시신를 넘겨 받았다.✈💯
그렇게 돌아 온 시신은
아주 끔찍하게 되어 있었다.🕍🚦
손톱과 발톱이
모두 다 뽑혀져 있었고,
코와 귀가 잘려 나가고
머리카락이 가죽째 뽑혀져 있었다.🔔📆
두 팔과 두 다리와 머리와 몸통이
따로따로 잘려져,
여섯 토막으로 나눠져 있었다.
10월 12일 시신을 넘겨 받고
이틀 뒤 서울 정동교회에서
열사의 장례식이 거행되고
시신은 이태원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하지만 무덤에서도
편히 잠들지 못했는데
어처구니 없게도 그 무덤 조차
유실돼 버리고 말았다.🌳🍁
도시계획에 의한 일제의 공사로
이태원 공동묘지의 유골을
미아리로 이장하면서
유골이 없어지게 되는데
이후 열사의 유골은 찾지 못하고 있다.🌲🍊
나라를 찾기 위해
맨몸으로 일제에 항거하셨던
순국선열들의 숭고한 뜻을 기리며
애국열사들에게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오늘 하루만이라도
경건한 자세로 보내야겠습니다!🌿🍈
유관순 명언
"나는 당당한 대한의 국민이다.
대한 사람인 내가 너희들의
재판을 받을 필요도 없고,
너희가 나를 처벌할 권리도 없다 "
유관순이 일본에게 재판
받을 당시 했던 말이다.⭕🔔
''내 손과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사오나, 나라를 잃어버린
그 고통만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만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