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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신수길 암살 소설 양부하

2. 폭풍

임진왜란이 일어나던 그 해 1592년 음력 3월 초 아흐레 날,
40대 남자가 부산포를 출발해 동래로 향하고 있었다.
갓과 두루마기 차림의 그는 시종 한명을 딸려 나귀를 타고 이동하고 있었다.
인물도 준수하고 체격도 크고 기품이 있어 보이는 이 남자는 누구인가?
그는 왜인이었다.
이름은 시마이 소우시츠(島井宗室).
그는 당시에 부산포 왜관에 온 왜인이었는데 발걸음을 동래에까지 뻗쳤다.
그가 부산포에 온 목적은 부산포 왜관 철수였다. 이미 풍신수길은 조선을 침략키로 하였고 20만 군사가 큐슈 가라츠(唐津) 나고야(名護屋) 성 일원에 모이고 있었다. 식량과 조총 등 무기류, 탄약 등 전투 물자, 말과 수레. 배 등 모든 것이 수길의 지시에 따라 갖추어지고 있었다. 수길이 나고야성에서 진두지휘 하였다. 일본 전국에서 이들을 태울 일천 여 척 선박이 모이고 있었다.
준비만 되면 건너올 예상 개전일은 4월 초. 이제 부산포 왜관을 철수하여야 했다. 보만강(동천) 하구에 70여년 가까이 자리해 있던 왜관도 철수하는 것이다.
소우시츠의 임무는 완수되었다. 왜인들은 모두 부산을 떠났다.
그러나 소우시츠는 그냥 떠날 수가 없었다. 전장이 일어나 초토화되기 전의 아름다운 조선 산천을 눈에 넣어 두고 싶었다.
모너머 고개를 넘었다.
여기서부터 동래이다. 동래 들판에 농부들이 보였다.
“어르신- 어제 비가 오더니 오늘 날씨도 좋고 농사 짓기에 좋습니다.”
조선말이 능숙한 소우시츠는 나귀 위에서 농부들을 향해 능청스런 인사를 하였다. 아무도 그가 일본인인줄 몰랐다.
소우시츠가 조선 땅을 밟고 다닌 역사는 오래 되었다
10여 년 전부터 부산포와 한양을 내왕했다. 1585년 수길이 큐슈를 정벌하자 다음 목표가 조선 이었다. 수길은 조선이 굴복하는 조선 입공을 교섭토록 하였는데 이를 맡은 이가 대마도주 종의조(宗義調)와 왜장 고니시(小西行長), 그리고 소우시츠였다.
소우시츠는 상인이었다.
그가 이 일에 참가한 것은 그가 조선의 동래상인, 개성상인, 한양상인들과 거래하면서 조선 사정에 정통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조선 입공은 어불성설이었다. 겨우 이뤄낸 것이 조선통신사의 일본 파견이었다. 정사 황윤길, 부사 김성일, 종사관 허성의 조선통신사가 1590년에 일본을 찾았고 신경전만 펼치다가 돌아와 버렸다.
일본은 싸움이 불가피하게 되었고 조선은 일본의 침입이 없다는 잘못 판단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