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하야. 반갑고 애절코나.
아비와 조부가 함께 동래성에서 순국하신 것을 나도 잘 안다. 🐥
네가 충절공의 후손이다.
부디 어디서에서라도 아비와 조부의 이름에 누가 되어서는 안 된다!”
“네. 명심하겠습니다.”🐝
“그런데 함께 온 저 왜인 처녀는 누구냐?”
뒤 따라 온 가오리에 대해 그가 궁금해 했다.
양부하는 곤란해졌다. 🐚
이런 낭패가...
속여야 하나?
말아야 하나...
군자는 거짓말을 하면 안 되는데... 🐓
양부하는 솔직히 말했다.
“사실을 말씀 드리면... 저 일본여인은 저의 약혼녀입니다. 이름이 가오리입니다.”🐢
“약혼녀? 일본여자라고?”
“네.”
김우정이 기절할 뻔 한다.
“아이고! 네가 충절공의 후손인데 아비와 조부를 죽인 왜녀를 아내로 맞아?” 🐟
김우정은 탄식했다.
그때
뒤에서 고함치는 사람이 더 있었다. 🍄
“조선 사람이 왜녀와 결혼을 해?
선비의 아들이 일본 여자를 처로 얻다니 이런 망발이 있나!”🌻
그는 20대 후반의 젊은이로 얼굴이 대추처럼 검고 기골이 양부하 만큼 장대했다.
그는 이름이 백수회(白受繪),
양산 가촌 사람이었다.
자는 여빈, 호가 송담이었다. 🐎
나이는 양부하보다 몇 살 많았다.
백수회는 10대 초반에 일찍 부모를 여의었으나 학행에 힘썼고 어렸을 때부터 그 기세가 남들에 비해 뛰어 났다.
19세 되던 해에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왜군에게 잡혀 일본으로 끌려 왔다. 🌗
그는 포로였지만 왜인들을 쩔쩔 매게 했다.
그는 지식과 과단성, 논리가 뛰어나 왜인들을 꾸짖으니 왜인들이 곤혹스럽지만 그 기세에 눌려 죽일 수가 없었다. 🍃
고국에 대한 절개를 굽히지 않으니 왜인들도 방임하였다.
그는 글이 좋아 왜인들이 그의 글을 얻으려고 줄을 서는 판이었다. 🐁
그는 포로 때에 한시와 가사를 지었으니 가사 4수는 「대마도에 도착하여」
「일본에서 노래하다」
「단가」
「교토에서 안인수와 시를 짓다」로서
모두 우국충정의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 사람아! 조용해라!”
김우정이 그를 말렸다.
“일본사람이라고 모두가 나쁜가?
사람마다 다르네.
이 일본 처녀가 무슨 죄가 있나? 🍁
부하는 내 친구 아들이네. 내가 회포를 나누려는데 그대가 웬 간섭인가!
들어가 있게나.”🐸
“사인의 자제가 왜녀를 아내로 삼는 것은 곤란합니다.”
“자네는 아직 장가도 못 가본 사람 아닌가?
장가나 갔다 와서 얘기하게. 🐯
천지음양을 자네가 얼마나 아는가?
시끄럽다.” 😄
그제야 백수회는 자기 자리에 돌아가 앉았다.
양부하가 그간 겪어온 과정을 말하자 김우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
“정말 고생 많았다.
그래도 네가 재주가 있더니 왜국 땅에서도 인정을 받는구나. 🐢
열심히 해라.
자칫 위해를 받을 수도 있다.
다치면 그것이 부모에 대한 불효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런데 저 일본 처녀가 자네 약혼녀라니 인사를 시켜라!
이름이 무어랬나?”🐤
“가오리입니다.”
“왜 하필 가오리냐?
좋은 이름도 많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