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양부하 41

🐎🐡🐋“부하야. 반갑고 애절코나.

아비와 조부가 함께 동래성에서 순국하신 것을 나도 잘 안다. 🐥

네가 충절공의 후손이다.

부디 어디서에서라도 아비와 조부의 이름에 누가 되어서는 안 된다!”

“네. 명심하겠습니다.”🐝

“그런데 함께 온 저 왜인 처녀는 누구냐?”

뒤 따라 온 가오리에 대해 그가 궁금해 했다.

양부하는 곤란해졌다. 🐚

이런 낭패가...
속여야 하나?
말아야 하나...

군자는 거짓말을 하면 안 되는데... 🐓

양부하는 솔직히 말했다.

“사실을 말씀 드리면... 저 일본여인은 저의 약혼녀입니다. 이름이 가오리입니다.”🐢

“약혼녀? 일본여자라고?”

“네.”

김우정이 기절할 뻔 한다.

“아이고! 네가 충절공의 후손인데 아비와 조부를 죽인 왜녀를 아내로 맞아?” 🐟

김우정은 탄식했다.

그때
뒤에서 고함치는 사람이 더 있었다. 🍄

“조선 사람이 왜녀와 결혼을 해?
선비의 아들이 일본 여자를 처로 얻다니 이런 망발이 있나!”🌻

그는 20대 후반의 젊은이로 얼굴이 대추처럼 검고 기골이 양부하 만큼 장대했다.

그는 이름이 백수회(白受繪),

양산 가촌 사람이었다.
자는 여빈, 호가 송담이었다. 🐎

나이는 양부하보다 몇 살 많았다.

백수회는 10대 초반에 일찍 부모를 여의었으나 학행에 힘썼고 어렸을 때부터 그 기세가 남들에 비해 뛰어 났다.

19세 되던 해에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왜군에게 잡혀 일본으로 끌려 왔다. 🌗

그는 포로였지만 왜인들을 쩔쩔 매게 했다.

그는 지식과 과단성, 논리가 뛰어나 왜인들을  꾸짖으니 왜인들이 곤혹스럽지만 그 기세에 눌려 죽일 수가 없었다. 🍃

고국에 대한 절개를 굽히지 않으니 왜인들도 방임하였다.

그는 글이 좋아 왜인들이 그의 글을 얻으려고 줄을 서는 판이었다. 🐁

그는 포로 때에 한시와 가사를 지었으니 가사 4수는 「대마도에 도착하여」

「일본에서 노래하다」

「단가」

「교토에서 안인수와 시를 짓다」로서

모두 우국충정의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 사람아! 조용해라!”

김우정이 그를 말렸다.

“일본사람이라고 모두가 나쁜가?

사람마다 다르네.

이 일본 처녀가 무슨 죄가 있나? 🍁

부하는 내 친구 아들이네. 내가 회포를 나누려는데 그대가 웬 간섭인가!

들어가 있게나.”🐸

“사인의 자제가 왜녀를 아내로 삼는 것은 곤란합니다.”

“자네는 아직 장가도 못 가본 사람 아닌가?
장가나 갔다 와서 얘기하게. 🐯

천지음양을 자네가 얼마나 아는가?

시끄럽다.”  😄

그제야 백수회는 자기 자리에 돌아가 앉았다.

양부하가 그간 겪어온 과정을 말하자 김우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

“정말 고생 많았다.

그래도 네가 재주가 있더니 왜국 땅에서도 인정을 받는구나. 🐢

열심히 해라.

자칫 위해를 받을 수도 있다.

다치면 그것이 부모에 대한 불효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런데 저 일본 처녀가 자네 약혼녀라니 인사를 시켜라!

이름이 무어랬나?”🐤

“가오리입니다.”

“왜 하필 가오리냐?
좋은 이름도 많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