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1668) 썸네일형 리스트형 반야심경 🐌🌱🍁 용안사 입구의 커피자판기에 붙은 반야심경 입니다 일찍이 중국 당나라 현장이 인도에 갈 때 익주 사천성의 어느 산승이 전해 주었다고 전하는 반야심경 입니다 🐤 세상은 空이며 지혜는 공을 아는 것이다 라는 요지의 반야심경은 현재 불교의 으뜸 경문 입니다 🍊 가을 낙엽이 날리는 산사에 반야심경이 참 지혜와 우주의 진리를 알려 줍니다 🍒 반야심경 🍮 이양훈 🍏 300원 커피의 작은 사색 3분 머물며 무한을 생각하다 사람은 어디서? 우주는 어디까지? 바람에 실린 부처님의 낙엽 편지 섞여야 🌹🌻🌸 꽃은 섞여야 아름답다 제홀로 피는 꽃은 볼품이 없어도 섞이면 오케스트라가 된다 🌷🌸🌾 용안사 입구에 무수히 핀 가을꽃들을 보면서 새삼 자연의 이치를 깨닫습니다 🍂🌺🌿꽃 💐이양훈🌱🌹🌻 코스모스 백일홍 금계국.... 섞여 피는 꽃이 더 아름답다 사람은 색깔이 다르다고 왜 서로 미워하고 죽이기도 하는지 가을이 무성한 용안사에서 🍁 석계서원 추향제 석계서원 추향제 향사 이예 선생 울주군 응존면 석천리 https://vod.kbs.co.kr/m/index.html?source=episode&sname=vod&stype=vod&program_code=T2011-0023&program_id=PS-2021162937-01-000&broadcast_complete_yn=N&local_station_code=11§ion_code=05#refresh 기을 별서 🍋🍐 오늘 지인의 별서에 갔 습니다 시골 집 뜨락에도 가을이 무성하군요 🍠 엄나무는 시들고 홍시는떨어지고 담쟁이도 말라 갑니다 🍊 바닥의 나팔꽃, 문득 보이는 신라 와당, 엄동이 와도 아궁이에 불 지피면 구들이 사랑처럼 따뜻할 겁니다 🍮🍈 추일별서 🃏 이양훈 🍔🌽 空庭 蔬菜翠 빈 뜰 소채는 푸르네 獨開 二三花 제홀로 핀 이삼 송이 꽃 簷鳴 無雀聲 처마에 참새 없는데 木落 知秋風 낙엽 소리 추풍을 알린다 🍊 野曠 稻欲拜 들은 빛을 잃고 나락은 고개 숙였네 村冥 無人道 촌길 어두워 사람도 없고 秋來 夜長歎 가을 오니 밤이 긴 탄식 初雪 夢中村 첫 눈을 꿈꾸는 촌마을이여 이언량 이섬 🍊언양 교동리 진장에 있는 이언량 이섬 부자 묘 입니다 임진왜란 때 수군 장수로 활약한 이언량 이섬 부자 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 함께 7년을 왜적과 싸웠고 🍒 마지막 노량 해전에서 충무공이 전사하자 더 발분하여 그 뒷처리를 하여 7년 왜란을 끝냈습니다 🍅 충무공 함대의 돌격장이었던 이언량(군수 역임 / 훈련원정 추증)과 파총 이섬(후일 옥포 만호 / 사도첨사 / 양산군수) 부자의 묘는 나라 사랑의 표상인양 진장 배밭 언덕을 지킵니다 🍒🍠🍇 이언량 이섬 부자 🍜 이양훈 🍯🍑🍅 가을 바람도 숨을 죽이노라 충무공의 수족이 된 부자 400여년 세월 배꽃은 피고 또 지고 이 가을도 저문다 자작 한시 추회 아직 가을이 가지도 않았는데 겨울이 먼저 옵니다 오늘 한시를 한 수 지었습니다 제목은 秋懷 입니다 野田 猶靑蔬 들밭의 소채 푸른데 寒氣 知近冬 한기는 겨울이 가깝네 多愁 不眠人 수심에 잠 못 이루고 雲月 行西明 운월은 서로 흐른다 🍊 山翁 悲白鬂 산옹은 흰 머리 슬프고 江鷺 醒夏夢 강로는 여름꿈을 깼다 孤婆 未消燈 외론 노파 등을 끄지 못한데 風盡 遠鷄鳴 바람 자니 먼 닭소리 🍒 小兒 爲稀老 소아가 고희가 되고 林步 益短杖 숲을 걷는 단장이 짧다 何日 初雪紛 어느 날에 초설 오려나 愁鳥 宿靑松 수조는 청송에서 자리라🍑 보삼마을 🍎보삼마을이 살아난다 1970~80년대 역사물을 찍을 수 있는 유일한 초가 마을이었다 🍒 뽕 씨받이 등이 촬영된 보삼마을이 이제 영화관을 갖춘 영화마을이 되었다.🍳 보삼영화제도 하나 만들면 어떨까? 🍍🍠 보삼마을 🍋 이양훈 🍓🍑 이재우 씨도 가셨구나 사람은 가도 영화는 영원하네 에로가 또한 예술이었구나 가을이 저무는 보삼마을에서 경남고 🍊오늘 동창회보에서 모교의 기원을 새삼 확인하게 되었다 모교는 1942년에 5년제 부산제2중학으로 개교했고, 당시 내선일체를 실천하는 조선과 일본인 학생 공학의 남중학교였다.🍓 일본학생 150명, 한국학생 50명이 동학년으로 제1회 입학생이었다.🍏 당시 부산은 조선인의 동래중과 부산상고, 일본인의 부산중(제1중)뿐이었고 모교가 등장하여 4중 체제가 되었다 일본인들은 교육만은 철저했으니 기숙사를 갖추고 교육행정에 어떤 비리도 없었고 암거래를 거부하고 굶어죽는 교사도 있었다. 한일학생간에 민족 감정으로 대립도 없지 않았지만 1945년 해방으로 일본학생들은 떠났고 이후 6.25때 참전하여 많이 산화했다. 신혼 아내를 홀로 두고 군문에 자원입대도.... 🍐🍒🍇 동창회보를 보고 🍯 이양훈 🍠🍬🍝 벌써 개교 80년.. 이전 1 ··· 71 72 73 74 75 76 77 ··· 20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