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雨雲 오늘 문수산에 비구름이 걸리고 비가 뿌립니다. 옛날 이 문수산을 찾아와 늘 절에만 머물던 청송사 산승과 대화한 어느 선비의 시가 생각납니다 🐳 청송사 중을 부르다〔呼靑松僧) / 무명씨 산승은 그윽한 처소에 늘 머물고 / 山僧常蟄 水雲窟 속객은 봄바람 속에 먼 길 왔네 / 俗客遠步 花落道 산승을 불러 서로 마주하여 앉았노라니 / 喚得歸來 坐相對 차 연기가 봄 비바람 따라 날아 오르네 / 茶煙細細 雨雲風
노인들에게 #코로나 코로나 확진자가 자택격리요양 중에 사망하는 사태가 자주 일어나고 있다. 특히 고령자가 그렇다 정부는 자택격리 요양자에게 휴대용 혈중 산소농도 측정기(pulse oxymeter)를 반드시 지급해야 한다. 외국에서 PCR 검사를 받아 코로나 확진된 후에 자택격리 요양 중에 갑자기 슴지는 사태가 많이 일어나고 있다. 특히 변이 바이러스가 그렇다고 한다.
옥룡암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경주 남산의 옥룡암(보물 201호 탑곡 마애불상군 소재)은 1943년 시인 이육사(1904~1944)가 머물면서 시 청포도를 쓴 곳이다. 당시 폐결핵에 걸려 이곳 옥룡암에서 정양하던 육사는 암자 정원의 청포도를 보고 고향 안동을 그리워하며 시를 지었다. 당시 절친 벗 신석초(1909~1975)가 문병 오려하자 만류하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 옥룡암 / 이양훈 청포도는 보이쟎고 청솔만 가득하다 북경 감옥에서 스러진 시인이여 못다 이룬 비원을 느끼노라 옥룡암 정월은 부처님에 와닿는 솔바람 파도 소리 뿐이로다
보리사 경주 남산 보리사는 불국사의 말사로 비구니 사찰이다. 886년(신라 헌강왕 12)에 창건했다 전한다. 경주시 남산에 있는 여러 사찰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삼국사기에 ‘헌강왕과 정강왕의 능이 보리사의 동남쪽에 위치한다’ (秋七月五日, 薨. 謚曰憲康, 葬菩提寺東南)는 내용이 나올 정도로 유서 깊은 사잘 이다. 보리사 석불은 너무도 잘 생기셨다. 이 부처의 모델은 누구일까? 나는 이 보리사 부처의 모델을 신라 하대의 영명군주 헌강왕으로 확신한다. 당시에 왕불(王佛)합일사상이 있어, 왕 = 부처이었다. 역사에 등장하는 헌강왕은 잘 생기신 분으로 전하니 그가 보리사 부처의 모델이었을 것이다 🔴 보리사 부처 / 이양훈 석굴암 부처보다 잘 생긴 부처 서구적 용모 당시가 처용시대었다 헌강왕의 모습이 아닐런지 남산..
유머 과속운전 차량이 오니까 교통경찰이 차를 정지시키고 정중하게 말하였다. “당신과 같이 과속을 하는 차량을 여기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운전한 아줌마가 미소를 지으며 말하였다. “당신이 기다릴 것 같아서 빨리 오느라고 과속이 되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교통경찰은 아줌마의 미소가 고마워 벌금 고지서는 끊지 않고 음주운전을 확인하기 위하여 음주측정기를 대며 말하였다. “여기에다 입으로 불어 보세요.” 미소 아줌마가 간드러지게 웃으며 요염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저가 이때까지 빨아보라는 남자는 많이 만나 빠는데는. 자신있어요 그런데 불어보라는 남자는 처음이네요.” 교통경찰이 박장대소를 하며 말하였다. “내가 교통경찰 5년에 아줌마같은 미소와 유머 잘하는 분은 처음이네요. 봐주겠으니 그냥 가세요.” 미소와 ..
죽는다 2,000년전 화산재에 덮였던 폼페이는 원래 5만여명이 살던 도시였다. 비세비우스 산이 대 폭발이 있기전 화산재가 조금씩 뿜어져 나오는 며칠 동안 노예와 가난한 시민들은 서둘러 피난을 떠났다. 결국 파묻힌 2,000 여 명은 귀족들과 돈 많은 상인들 이었다. 돈과 권력, 명예로 배부른 사람들은 마지막까지 자기의 저택을 지키려다가 결국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태풍에 뿌리가 뽑히는 것은 큰 나무이지 잡초가 아니다. 자신이 일등이라고 생각한다면 먼저 이것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모두 지구별에 놀러온, 여행객들이라는 사실 말이다. 이곳에서 소풍을 끝내는 날 먼길을 떠나야한다. 여행이 즐거우려면 세가지 조건이 맞아야 한다 첫째, 짐이 가벼워야 한다 둘째, 동행자가 좋아야 한다 셋째, 돌아갈 집이 있어야 한다 이..
상서장 신라 때 최치원의 집인 상서장입니다. (경주 박물관 맞은편 인왕동의 남산 기슭 소재) 당나라에서 돌아온 최치원이 여기에서 시무7조를 써서 진성여왕에게 올려 상서장이라 합니다. 6두품 출신 최치원은 최초의 崔씨로 보입니다. 최치원의 아버지는 견일이라 했지 최씨라 하지 않았기에(삼국사기). 견일이 인근 외동읍 말방의 숭복사를 창건한 사실로 보아 이곳 상서장이 최치원의 출생지이자 집입니다. 최치원의 부 肩逸은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기골이 장대한 인물이었습니다. 🐎 상서장에서 / 이양훈 12살에 도당하여 남경시장(율수현위)이 되다 그 빼어남에도 골품제로 길이 막혔구나 요즘 21세기 최치원은 없는가 대숲 상서장에 겨울안개가 덮인다
장창곡 부처 경주 남산 장창곡입니다. 1924년 이곳에서 미륵불이 발견되어 한때 삼화령 미륵으로 명명됐지만 이제 장창곡 미륵으로 고쳐졌습니다. 신라 돌부처 중에 가장 애기답게 귀여운 부처님입니다. 🐦 장창곡 미륵 / 이양훈 가장 귀여운 애기 부처님 천년 만에 나타나다 주변 공동묘지 중생들 극락 인도하였던가 옮겨졌다니 섭섭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