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분류 전체보기

(1668)
울산왜성 울산왜성입니다. 1597년 12월 말부터 1597년 1월초까지 10일간 조명영합군과 왜군 사이에 치열한 전투가 펼쳐졌습니다. 당시 이 왜성에서 농성한 가등청정이 미리 대비하지 못한 그의 실책과 처벌을 두고 일본 대명들이 반씩 나눠지고 (동군 덕천가강 • 서군 풍신수뢰) 1600년에 그들은 세키가하라에서 대전을 펼쳤습니다. 그 때 패배한 서군의 대장 히데요리는 나중에 자살하므로 일본에 덕천막부가 생겼습니다. 알본사를 크게 바꾼 역사의 현장 울산왜성(학성)에는 오늘도 무심한 산보객만 오르내릴 뿐입니다. ♥★ 울산왜성 10만 대군 맞싸워 2먼명이 죽었네 아군의 피훌림 헛되지 얺아 일본사가 크게 바뀌었네 무심한 솔바람만 옛전장을 만진다
암소 9마리 영국 귀족 자제들이 주로 가는 영국 최고 명문사학 중 하나인 이튼칼리지 출신 중에서 제1차 세계 대전에서는 5,619명이 참전해 1,157명이 전사했고, 제2차 세계 대전에서는 4,690명이 참전해서 748명이 전사했다.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은 1차 세계대전 중 고작 15세의 나이에 차량 정비 장교 보직을 맡았었고,여왕의 차남 앤드류 왕자는 포클랜드 전쟁에 전투기 조종사로 참전했다. 우리도 삼국 시대, 신라의 귀족 자제로 이루어진 화랑은 전쟁터에서 항상 가장 위험한 곳에서 목숨을 걸고 싸워야 했다. 김유신의 아들 김원술은 당나라와의 전투에서 패배했을 때 죽음을 각오하고 마지막 전투에 뛰어들려는 것을 부하 장수들이 김원술의 말고삐를 잡고 퇴각하여 살아 돌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 김유신은 병사들의 죽..
종실 직강 묘 오늘 학성이씨 2세 종실 공과 서면파조 3세 이직강 공의 묘를 찾았습니다. (울주군 온양읍 고산리) 최근 묘 앞에 종실 님의 안내 표석도 섰습니다. 이종실(李宗實 • ?~1459 • 경상좌수사)은 시조 이예의 차자(장자 이종근은 청량파조이며 대사헌 양희지의 장인, 수양대군 & 성삼문의 친구로서 양근군수 역임)로서 1459년(세조 5) 8월에 통신부사(通信副使) 로 일본에 가다가 풍랑을 만나 배가 일본 열도 근해에서 표몰하여 순직하였습니다. (당시 왜승 준초가 처리 보고차 조선에 왔다가 김시습을 만남) 이직강(李直剛)은 종실 님의 일곱 아들(직온 / 직량 / 직공 / 직검=월진파조 / 직겸=흥해파조 / 직강=서면파조 / 직유=농소파조) 중에 제6자로서 그 후손들이 이곳 온양을 비롯하여 웅상 웅촌에 번성하였..
효정원 현재 장애인 수용 치료시설인 동향원 (울주군 두동면 천전리 소재)의 전신인 효정원의 1986년 모습입니다. 당시 부산 모 경찰서장 출신의 김병대 씨와 부인 박창숙 씨가 자폐인 아들의 장래를 위해 부산시 괸할의 효정원을 울산에 설립했습니다. 그러나 운영자금난과 장애아 사망 등으로 사회문제가 되면서 부부는 고발되는 등 온갖 어려움을 겪었고 이제 아주 잊혀졌습니다. 지금 동향원은 복지시대를 맞아 풍족한 국가 지원으로 잘 운영되고 있죠. ♥★ 효정원 / 이양훈 30살이 되어도 3살 지능의 아들 그 아들을 두고 어찌 눈 감으랴 부부가 흘린 눈물의 언덕 멧비둘기 한마리 울고 지나간다
좌봉요 울주군 온양읍 외고산리 좌봉요(左峰窯)입니다. 좌봉 김응한(金應漢)[1935~2004]선생은 경남 마산에서 출생하셨고 한국도자사(陶瓷史)의 1세대로서 일본에서 신정희와 함께 가장 알아주는 도예가였습니다. 천황산 도요지 조사차 울산에 왔다가 정착하였다네요. 임진왜란 이전 울산에 청량면 문죽리에 수문 청자 관요가 있어 고려 ~조선초에 걸쳐 청자룰 구웠고 임진왜란 때 그 도공들은 삼동 사촌의 관요 도공들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갔지만 좌봉의 스승님은 천황산에 숨어 조국을 지켰습니다. 온양읍 좌봉요는 판매도 함니다. 많은 이용 바랍니다. 현재 장남 김현규 2세 장인이 가업을 이어 아버지 못지 랂은 도자기를 빚고 있습니다. ♥★ 좌봉요 / 이양훈 울산에 온 한국 최고 명인 청자처럼 고아한 삶을 살았네 흙에 생명을 넣..
니카노 고지 청빈의 사상을 쓴 나카노 고지(中野孝次)가 죽었네요. 1925~2004의 생을 살았군요. 1925년 후쿠오카에서 태어나 구마모토의 제5고(현 웅본대학교)와 동경대 독문학과를 졸업했습니다. 학습원대 교수로 있으며서 수십 권의 저서를 남겼는데 그중 승 양관(良寬) 등의 행적을 담은 청빈의 사상은 1980년대 아시아의 베스트셀러였고 한국에도 번역되어 많이 읽혔습니다. 일본은 인구가 1.26억으로 인구 5,200만의 우리보다 인재가 더 많다고 보아집니다. 나카노도 그 중의 한명으로 우리 중에서 그와 대적할 자는 다산 정역용 외 여러분이 있습니다. (승 양관 ↔ 법정 스님으로 봅니다) 우리는 인재육성 인간개발 사상개발이 취약합니다. 모두 입시방편, 메달획득, 돈벌기에만 매달려 정작 교육의 본질, 인간의 본질, 삶..
돈벌기 돈을 좋아하는 어느 의사가 기발한 아이디어를 냈다 그는 병원 입구에 이렇게 간판을 달았다. "단돈 100만원으로 모든 병을 고쳐드립니다. 실패할 경우 1,000만원으로 돌려 드립니다." 한 엉큼한 사람이 1000만원 를 쉽게 벌수 있을거 란 생각에 방금 문을 연 이 병원에 들어갔다. 환자,"미각을 잃었어요" 의사: "간호사! 22번 약을 가져와서 이 환자분의 혀에 3방울 떨어뜨리세요" 간호사는 의사의 말대로 했다. 환자: "웨~엑" 휘발유 잖아요!" 의사:"축하드립니다! 미각이 돌아오셨네요! 백만원 내세요 짜증이 잔뜩난채 로 백만원를 내고 갔다. 며칠 후 그는 변장하고 다시 이 병원을 찾았다. 환자: "기억력을 잃어버렸어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아요" 의사: "간호사, 22번 약을 가져와서 혀에 3방울 ..
장천사 울주군 두동면 천전리 장천사지에 있었던 장천사지탑입니다. 지금은 대곡댐 안에 들어가버렸지만 옛날 이곳에 장천사가 있어 수십 명의 승려들이 기거하였습니다. 기록을 보면, 화랑각석계곡으로 내왕한 신라왕들을 수발하고, 오가는 나그네들의 숙박처도 되었다고 합니다 또 백두산 호랑이들이 내왕하는 길이 장천시앞 대곡천이라서 늘 호랑이를 볼 수 있었다고도 하지요. 이 장천사지탑은 1986년 사진으로서, 그 탑에 새긴 팔부중상의 아름다움이 신라미술 중에 최고였는데 1990년에 도난되었습니다 당시 천전리 대리 마을에 사는 어느 보살의 밤 꿈에 관음보살이 현몽하여 "나는 간다- 잘 있거라ㅡ" 하여, 밤에 뛰쳐나오니 탑재를 실은 도굴꾼들의 트럭이 저만치 도망가더랍니다 ♥★ 장천사 / 이양훈 도굴된 신라탑 뉘집 정원에 있을까?..